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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in Book

<나만의 책> 白石評傳 1

<나만의 책> 안도현, 『백석평전』 p456, 다산북스, 2014. 6

‘나만의 책’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책을 더 깊게 읽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읽은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입니다. 큰 카테고리는 인문학, 관심 주제(자존감, 물리학), 기독교 그리고 일상(삶)입니다. 그래서 내가 읽은 책의 마음에 와 닿은 문구나 책 내용에 대한 느낌과 평을 쓸 것입니다. 책은 길입니다. 그 길은 사람이 사는 길이고 사람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 길의 끝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릴 것입니다. ‘나만의 책’이 독서하는 사람들에게 꼼꼼히 읽고, 자신만의 글을 쓰고, 그것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작은 출발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직접 쓴 책, '나만의 책'이 종이책으로 발간될 그날을 기대하며... 티스토리블로그 ‘나만의 책’을 시작합니다. -BOOKRO썰

 

귀향

개성~평양~정주~신의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6, 17

백석의 시를 지배하는 음식이 모든 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가 음식을 감각의 총화로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시에 배치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음식은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해 독자를 시의 자장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1912년 생.

백석의 집은 오산학교 바로 코앞이다.

백기행(백석의 어릴 때 이름) 아버지, 백시박(백용삼, 백영옥)

장남 백석, 7살 때, 협행, 10살 때 상행, 14살 때 현숙(어린 나이에 죽음)

 

오산학교 시절

오산(五山), 남산, 천주산, 제석산, 연향산

조만식(선생) 교장

 

소월과 백석

31

김소월은 백석보다 6년 선배로서 오산학교 12회 졸업생이었다.

김억은 오산학교 4회 졸업생이다.

36

소월이 시의 ‘노래’로서의 기능에 심취했다면 백석은 묘사를 통한 ‘이야기’의 효과에 더 끌렸던 것이다.

38

1929년 3월 5일 백석은 오산고보를 졸업한다. 「그 모母와 아들」, 단편소설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 당선

1930년 오산학교 대규모 시위 사건

41

이 사건은 백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가까이서 목도한 정치적 시위 현장이었다. 식민지에서 조선인이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심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아오야마학원으로 유학을 가다

42

일본으로의 유학은 백석에게 두어 가지 삶의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나는 서양에서 물밀 듯이 밀려오는 근대의 세례를 받을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천형처럼 잚어지고 가게 될 시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43

노다지를 찾아낸 그(방응모)는 하루아침에 조선 최고의 금광왕이 되어 갑부의 대열에 올라섰다. 1926년의 일이었다.

 

일본에서의 문학수업

48

이시가와 다쿠보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52

그러나 벡석은 단 한 편도 알본어로 된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모더니즘적인 시를 탐독하고 시론을 받아들였지만 조선 사람의 언어를 지키는 시인이고자 했다.

55

가마구(까마귀)

58

「해빈수첩」 개, 가마구, 어린 아이들, ‘남이두시기해변(이즈반도의 가카사키의 해변)’

59

이 수필은 백석이 유학 시절 이미지스트로서의 학습과정을 거쳤다는 하나의 증표가 된다

스물 세 살의 청년 백석은 4년 동안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이제 평북 정주 출신의 촌놈이 아니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멘 모던보이였다. 외모뿐만 아니라 영어에 능통한 모던 지식이었고, 서구와 일본의 현대시를 몸으로 받아들인 모던 작가였다.

 

<조선일보>와의 인연

1933몀 3월22일 방응모는 <조선일보>를 인수했다.

63

백석과 허준

 

광화문의 3인방

백석, 신현중, 허준

결벽증

70

백석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세상은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그는 이더러운 세상을 혼자서라도'맑은 사람이 되어 건너가고 싶었던 것이다.

실비 내리는 어느 날

1936년 1월 시집 《사슴》

 

신석정의 화답시

 

수선화는

어린 연잎처럼 오므라진 흰 수반에 있다.

수선화는

앙탉 모양하고 흰 수반이 안고 있다.

수선화는

솜병아리 주둥이같이 움이 자라난다

수선화는

아직 햇볕과 은하수를 구경한 적이 없다

수선화는

돌과 물에서 자라도 그렇게 냉정한 식물이 아니다

수선화는

그러기에 파아란 혀끝으로 봄을 핥으려고 애쓴다

 

시인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80, 81

1935년 8월30일 「정주성」

‘메기수염의 늙은이’ 풍속과 사람을 겹치게 해서 보여주는 특기를 지속적으로 발휘한다. 이것은 시에 생생한 활기를 더해주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시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독특한 효과를 얻어낸다.

정주성, 1811년 홍경래의 난, 홍경래가 최후를 맞이한 곳

 

85

아카시아들이 언제 힌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허준, 「기적」

 

사지를 벌리고 누었으니 몹시 흙냄새가 온다

그 사취死臭는 이상이도 향그러운 냄새다

어듸서 나는 기적汽笛소리가

하늘에다 저런 구멍을 뚫고 가는고

저 구멍에 보이는 것이 내 고향인가 부다

 

 

 

100부 한정판 시집 『사슴』

통영 처녀 박경련

90

그래서 백석이 선택한 것은 시에 등장하는 화자의 성장을 염두에 두면서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두루 고려한 배치였다.

1부 ‘얼럭소새끼의 영각’ 「여우난골족族」은 원적, 「가즈랑집」은 출생...

2부 ‘돌덜구의 물’

3부 ‘노루’ 「수라修羅」

4부 ‘국수당 넘어’

효자노적지지정문(孝子 盧迪之 之 旌門)

*旌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그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

 

 

『사슴』은 문단에 던진 포탄

97

김기림은 백석의 시가 속의 동화와 전설에 나오는 소재, 그리고 향토적인 분위기를 취하고 잇지만 거기에 따른 감상주의와 복고주의를 일체 베격하도 있음에 주목하였다. 그는 백석의 시에 내재된 모더니티를 발견하고 그 모더니티가 치열하고 철저한 비타협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었다.

박용철은 ‘방언’의 의미와 위력에 주목하였다.

99

그러니까 백석의 평안도 방언 사용은 향토주의에 매몰된 결과물이 아니라 준비된 창작방법론이며 의도된 기획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지.’

100

그러나 백석은 달랐다. ‘백석은 시어를 현실생활과 거리가 있는 생경한 ’지식의 언어‘아 아닌 생활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명료한 일상의 어휘로 운용하였다. 그리하여 몸과 관념이 일체화된 시를 써낼 수 있었다.

 

『사슴』을 보는 또 다른 눈

임화의 평

127

그솟에는 생생한 생활의 노래는 없다. 오직 이제 막 소멸하려고 하는 과적적인 모든 것에 끝없는 애수, 그것에 대한 비가이다. 요컨대 현대화된 향토적 목가가 아닐까? 『사슴』의 작자가 시어상 일반화되지 않은 특수한 방언을 선택한 것은 결코 작자 개인의 고위나 또 단순한 취미도 아니다.

... 임화의 비판의 핵심은 방언의 가치에 관한 것이었다. ‘감성적 복고주의’의 결과라고 단정한 것이다.

128, 129

이효석 『영서의 기억』에 실린 백석의 평

오장환 『백석론』 “시인이 아니라 시를 작난(즉 향락)한 모던 청년” ... “나는 백석에게서 많은 점의 장점과 단처를 익혀 배웠다.”

135

이동순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말하자면 사상적으로는 온건중도파, 문학작으로는 이미지스트와 민족구의를 결합한 상태로 설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백석 시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

137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랭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나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137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게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잠, 라이나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140

산山 뽕닢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둥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백석, 「산山 비」 전문

 

141

누군가의 구둣발이 지렁이 한 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발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들만의 단란한 식탁에서 환희 웃고 있으리라

지렁이 한 마리가 포도에서 으깨진 머리를 들어

간신히 집 쪽을 바라보는 동안

-이시영, 「귀가」 전문

 

141

유성호, 「백석 시의 영향」

백석 시는 우대 시인들에게게 어떤 영향과 흔적을 남겼는가. 그것을 귀납해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근대 혹은 ‘근대적인 것’에 대한 반성적 전거와 ‘시각’보다는 ‘후각/미각’으로 경사된 사물 인식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의 시적 기표를 통해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보인 현실 이해 방식이고, 마지막 하나는 운명 또는 생에 대한 중후한 성찰의 태도와 그 특유의 산문시형이다.

142

『사슴』은 2005년 계간 ≪시인세계≫의 설문조사에서 현역 시인 156명이 뽑은 ‘우리 시대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인세계≫는 20102년 문학평론가 75명이 뽑은 한국 대표 시집을 공개했다. 1위는 63명이 선택한 김소월의 『진달래꽃』, 2위는 60명이 선택한 서정주의 『화사집』 3위는 59표를 얻은 백석의 『사슴』... 님의 침묵,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지용시집, 이상선집,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 임화의 『현해탄』, 육사시집이 그 뒤를 이었다.

 

함흥에서 만난 자야

148

26살 백석, 함흥관, 진향(22살), 자야子夜. 이태백의 「자야오가子夜嗚歌」

 

친구 신현중의 놀라운 배신

155

불쑥 펼쳐진 1937년 봄은 잔혹했다. 백석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박경련과 그의 절친햤던 친구 신현중이 결혼했다는 소식이 함흥으로 날아들었다...

백석은 열렬히 흠모했던 처녀를 빼앗긴 동시에 친구까지 잃어버렸다. ..

허준은 그아 아네 순영의 오빠인 신현중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158

백석은 그렇게 실연의 상처를 도려내어 시행 곳곳에 숨겨놓았다.

 

중일전쟁의 틈바구니에서

160

하지만 그(방응모)는 1933년 일제의 기관총 구입비용 1,600만원을 헌납한 것을 시작으로 중일전쟁을 전후해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동아일보>의 김성수 사장도 군사헌금 1,000만원 헌납하는 등 중일전쟁을 전후해 친일신문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161

게다가 고향 평안도의 방언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백석만의 특허성표였다.

164

가을이 되어 백석은 긴 침묵을 깨고 시를 대거 놓았다. ≪조광≫ 10월호에 「북관北關」, 「노루」, 「고사古寺」, 「膳友辭」, 「山谷산곡」 ‘咸州詩抄’라는 제목으로, ≪여성≫ 10월호에 「바다」... 까지 6편의 시를 쏟아내면서 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명태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큰한 비릿한 구릿한 이 멋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新羅 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 「북관北關」전문

165

이 시는 백석의 시가 북방정서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는 신호였다. 관서지방에서 ‘기억’으로 되살려내었던 음식이 북관에 와서는 ‘현실’의 음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이 무렵부터 백석은 화자 ‘나’를 적극적으로 시에 등장시킨다. 간결한 묘사와 감각적인 이미지를 제사하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 지었던 『사슴』의 세계에서 벗어나 화자의 체험과 주관이 가미된 새로운 시의 영토를 찾아 나선 것이다.

 

≪2에서 계속≫


백석이 살다간 시대는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나라와 주변이 불안했습니다. 백석은 주권을 잃은 식민지의 시인으로 살아야 했고, 이데올로기의 절정인 한국 전쟁에서 남과 북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시인은 북한의 오지로 쫓겨나 살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는 운명에 처합니다. 이는 시인 한 사람이 사라진 것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짓밟은 우리의 흑역사인 셈입니다. -BOOK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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